지금와서 생각하면 화장이라 부르기도 우습지만, 내 화장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 '누크(NUK)' 파우더였다. 아기 엉덩이에 바르는 하얀 분은 아니고, 고등학생을 겨냥해서 만든 듯 약간 분홍빛이 나는 살색 파우더가 있었다. 그것도 아기 엉덩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누크 파우더와 좀 후에 나온 '클린앤클리어' 파우더는 고등학교 시절 나름 꾸미고 싶어하던 우리 사이에서 Must Have Item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시끄러운 음악을 매우 좋아했던 나는 비쥬얼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그런 분위기를 내려고 나름 꽤 신경을 쓰고 다녔다. 특히 라이브 클럽이나 락 공연을 보러 갈 때면 귀에 피어스를 주렁주렁 달고서는 눈두덩이 시커멓게 칠하는 스모키 메이크업을 즐기곤 했다.
대학에 와서 만나는 사람들의 유형이 고등학교 때와는 또 사뭇 달라졌고 화장법도 많이 바뀌었다. 대학 입학 초반 나와 서로에 대해 굉장히 못마땅해 했던 경진양의 말을 빌리자면 내 이미지는 "대학에 잔디깔고 들어온 애 같다", "쟤랑은 친해지지 말아야지", "저런 날라리가 어떻게 우리학교에?" 등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말하길 "니 대학 4년 화장 중, 입학식날 화장이 가장 진했다"고. 그렇게 스모키만을 고집했던 난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분홍색 아이새도우도 사보고, 반짝이가 박힌 립글로스도 발라봤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좀 여성스러워졌달까?!ㅋㅋㅋ 이전의 나는 투명 메이크업과 투명 메니큐어를 칠하는 것은 화장을 모독하고 가식으로 가득찬 행위라고 생각했었으나, 대학 4학년 때 나는 이미 투명 매니큐어를 바르고 분홍색 립글로스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다닐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취직을 하고 난 오히려 멋진 커리어우먼 답게 더욱 화려한 화장을 하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실제 직장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나이를 한살 한살 더 먹어갈수록 기본적으로 바르는 화장품의 양은 늘어났다. 그러나 시간 많던 대학생 때처럼 거울 앞에 앉아 이쁘게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마스카라를 바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장시간의 컴퓨터 노출과 과다한 커피와 부족한 수분섭취로 피부는 점점 푸석해졌고 화장품의 작은 화학적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오히려 취직을 하고 나서는 더 화장을 하지 않게 됐다. 가끔 중요한 회의나 행사가 있는 경우만 제외하면 말이다.
게다가 중국에 와서는 정말 "아예" 화장 을 안하고 살고 있다. 마스카라 발라본 것이 한손에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메이크업베이스에 파우더라도 바르고는 다녔는데 꾸미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관대한 중국에 와서 살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변하는 것 같다. 이제는 정말 기초화장품에 선크림 정도만 바르고 색조화장은 아예 하지도 않고 산다. 대부분 이렇게 맨얼굴로 돌아다니는 것이 편하고 좋지만, 또 가끔은 좀 꾸미고 살자..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런데 화장도 부지런한 사람이나 한다. 나의 경우는 사실 회사에 출근할 때에는 화장을 좀 하고 다니고 싶어도 우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까지 화장할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화장품 중 색조화장품들은 다 기본 2년은 넘은거 같은데, 계속 써도 되나 모르겠다.
S군은 내가 화장하고 꾸미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내가 화장을 하면 어색하다고 한다. 워낙 맨얼굴만 봐와서 그런가보다. 근데 나는 좀 아쉽다. 너무 처음부터 맨얼굴을 보여준 것 같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설레면서 어떻게 하면 더 이뻐 보일까 거울 앞에서 화장품을 들고 고민하는 일도 어찌보면 하나의 즐거움인데. 이제는 오히려 그를 만날 때 화장하는게 특별하고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화장한 것 보다는 맨얼굴이 낫다는 말이 맨얼굴 보다는 화장한 게 낫다는 말보다는 훨씬 좋으니 그냥 만족해야지.
가끔 드는 생각이 얼굴만이 아니라 마음도 생각도 화장이 좀 필요한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결점을 좀 감추고 예쁜 곳은 더 도드라져보이게 화장을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단점은 감추고 장점은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노력은 하면서, 상대와 성격이나 기분을 맞추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곤 한다. 화장은 거짓은 아니니까, 상대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한 세심한 배려나 노력은 가식이나 허위라고 볼 수는 없는 거 같다. 물론 화장이 지나쳐 분장이 되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민낯에 자신있는 사람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내일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해볼까?!(과연 할 수 있을까...)
태그 : 화장



덧글
임둘 2010/03/28 20:20 # 삭제
소상비자 2010/03/28 2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