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가 없어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일제시대 당시에 우리가 소위 "애국열사"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애국행위"를 한 것일까? 그 시대의 사람들이 특별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시대 사람들 역시 같은 상황이 된다면 당시와 같이 국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보일까?
여순감옥으로 유명한 여순지역은 중국 최대의 군사 요충지역이다. 핵잠수함이 무려 20대 정도가 포진해있다고 하니.(우리나라는 한대도 없지 아마?!) 개혁개방을 외쳤던 떵샤오핑에게 중국의 보수세력들이 국가의 전부를 이렇게 다 개방해서는 안된다는 반발을 했을 때, 떵샤오핑이 "나는 여순은 개방하지 않았다!"라고 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란다.
그런 여순에 다녀왔다. 원래 다롄 시내보다도 더 발달된 지역이었다는데, 워낙 천혜의 지형을 타고나서 군사지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오히려 모든 것이 제한되고 금지된 불운의 도시. 이제는 작은 어선들이 싣고온 비릿한 생선냄새와 철통같은 군대만이 남아있는 곳.
그런 곳에 있는 "여순감옥"은 아직도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 관광객들이 표를 받는 사람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중국인인양 위장하고 관람을 하고 온다고 하던데. 안중근의사와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셨던 곳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볼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 다행히 여순에 계신 조선족 교수님의 도움으로 나는 당당히(?) 한국인임을 밝히고 여순감옥을 다녀올 수 있었다.
감옥이라는 곳은 어디나 가면 무언가 위압감과 서늘함을 느끼기 마련이겠지만,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머금은 바람과 빗물의 무게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인건지.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가슴이 턱 하고 눌려 막혀버린 기분. 게다가 옛날에 교수형 당한 사람들을 허벅지 정도 높이의 통에 그대로 담아 묻었다는데 그 통을 그대로 파내어 전시를 하고 있었다. 통 속에 몹시 불편하게 쭈그리고 있는 시체들을 보고 나니 속에서 울렁증까지 일어났다.
사실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평소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지라 그가 한 말과 행위가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31세의 안중근이라는 인물이 끌려와서 수감되었던 독방을 들여다보고,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고등법원 대법당의 참관석 자리에 앉아보고, 그가 교수형을 당했던 그 장소에서 묵념을 하고 돌아오면서 계속 한가지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무엇이 그를 총 쏘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그를 한겨울 감옥에서도 끝까지 글을 쓰게 만들었으며, 무엇이 그를 부당한 판결을 받고도 사형을 받겠다는 말을 하도록 만들었으며, 무엇이 그를 교수대까지 이끈 것인지. 도대체 그가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인지. 난 아직 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2008/08/31


